◯‘R’자 든 달 채취한 굴 안전!
찬바람 불고 눈 내리는 겨울이 오면 보령 사람들의 밥상에는 굴 요리가 흔하게 오른다. 겨울 바다향이 물씬 풍긴다. 갓 따온 생굴을 초장이나 소금에 찍어 먹거나, 미나리 등 야채에 섞어 무치거나 동치미 국물에 말은 굴회, 무와 쪽파 넣고 끓여낸 굴국, 된장찌개에 넣거나 전을 부쳐 먹기도 하였다. 또 마늘과 고춧가루에 살짝 간한 어리굴젓을 담거나 김장 김치 속에 넣어 먹었다. 특별 식사로 굴칼국수, 굴밥, 굴국밥을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 굴은 9월, 10월에도 채취하지만, 본격적인 채취와 소비는 초겨울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이어진다. 5월부터 8월까지는 산란기로서 독성이 있어 먹지 않는다. 우리 지역에선 보리가 패기 시작하면 먹지 않다가 벼 바심 끝나면 먹기 시작하였다.
생선회를 즐겨하지 않는 서양 사람들도 이 굴만큼은 고급 식재료로, 날 것으로도 잘 먹는다. 그래서 영어에서는 월을 표시하는 단어에 ‘R’자가 들어간 달인 구월부터 이듬해 4월(September, October, November, December, January, February, March, April)까지 굴을 먹고, A자로 시작되는 달부터 A자로 끝나는 4월부터 8월까지(April May June July August)는 굴을 잘 먹지 않는다.
옛 책에는 석화(石花) 혹은 모려(牡蠣), 여합(蠣蛤), 모합(牡蛤), 여(蠣), 호려(蠔蠣)라고 하였다. 영어로는 ‘oyster’라고 부르며 필수 미네랄인 아연 성분이 다량 포함되어 있다. 최근 굴을 지칭할 때는 껍질 채로 있을 때 ‘석화’, ‘석굴’, ‘각굴’이라고 부르고, 한쪽만 열어놓으면 ‘반각’이라고 하며, 완전히 껍질을 제거하면 굴이라고 불러 구분하기도 한다. 크기에 따라 큰굴, 중굴, 잔굴로 나누는 말도 있다.
◯ 바다의 우유 굴 천지, 만세 보령!
30년 전까지만 하여도 겨울만 되면 대천시 중앙, 한내, 동부시장, 웅천장, 주산장, 청소장 등에는 바다에서 갓 채취한 굴을 파는 아낙네들로 붐볐다. 그들은 싱싱한 생굴을 사발에 담아 싼 가격에 내놓았다. 그때는 누구나 저렴한 굴을 몇 사발씩 쉽게 구할 수 있어 싱싱한 굴을 실컷 먹을 수 있었다. 필자도 어린 시절 종종 어머니께서 굴 한 사발에 참기름 한 방울 치고, 소금 한 줌 넣어 후루룩 마신 기억이 있다.
최근 굴이 바다의 우유라고 할 정도로 영양 만점 식품, 최고의 피부미용 탄력 유지식품, 서양 최고의 매력남 ‘카사노바’가 상시 복용한 보양 식품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굴을 찾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다. 더 이상 싸고 흔한 것이 아니라 덩달아 귀한 대접을 받기 시작하였다. 우리 지역 굴은 천북의 장은리, 사호리, 학성리, 오천의 고정리, 송학리, 웅천 관당리, 독산리, 황교리, 주산 증산리 갯벌에서, 그리고 보령 앞바다 섬 등 보령 해안 어디서나 쉽게 채취할 수 있었다. 특히 보령의 굴은 민물과 바닷물이 합쳐지는 곳에서 딴 것이 가장 맛이 좋았다. 특히 천수만 아래 천북 해안과 웅천천 하구 소섬 일대가 최고의 굴 채취 단지였다. 증산리나 황교리 사람들이 소섬 일대에 가서 한나절 굴을 따면 대바구니에 두 번 따고도 남을 정도로 많았다고 한다. 여기 굴은 맛도 좋아 조선시대는 임금님께 진상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 98%가 참굴! 깊은 물속 토굴, 강물 속 벚굴은 별미!
보통 우리가 먹는 98% 이상의 굴이 참굴이다. 자연산으로 갯벌에서 채취하거나 투하식으로 양식 혹은 수면 아래 발을 매달아 수하식 양식하는 것이 모두 참굴이다. 크기는 7~10cm 정도로 모양은 일정하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길쭉한 형태를 띤다. 자연산 참굴은 바위에 직접 붙는 왼쪽 패각은 불룩하고 큰 반면, 뚜껑 여닫듯 쓰이는 오른쪽 패각은 작고 납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토굴은 둥글넓적한 모습이 마치 가리비를 닮았고 배가 불룩하다. 수심 깊은 바위에 붙어있거나 모래 바닥에 붙어있다. 참굴과 달리 양식이 잘 되지 않고, 서해안, 남해안에 많다. ‘떡굴’ 혹은 ‘갯굴’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보령에서는 굴 채취하는 갯벌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굴집에서 굽거나 굴회로 많이 나온다.
강에서 서식하는 강굴(벚굴)도 있다. 벚굴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벚꽃 철인 봄이 제철이라서 이다. 남해와 만나는 섬진강 하구, 전라남도 광양시 망덕포구와 경상남도 하동군 신월포구에서 자란다. 껍데기의 크기에 비해 속살이 야무지지 않아 '벙'이라는 접두사를 붙여 '벙굴'이라 불리거나 강에서 나는 굴이라 해서 '강굴'이라 불리기도 한다. 벚굴이라는 이름은 강바닥에 붙어있는 모양새가 벚꽃과 같기도 하고 벚꽃이 피는 시기에 가장 맛이 좋기도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 서해 어리굴젓이 남해안 것보다 훨씬 맛 좋아?
자연산 굴이나 서해안 투하식 양식굴은 밀물 때 물이 잠겨있을 때 먹이활동을 하고, 썰물 때는 먹이 활동을 멈추게 된다. 그리하여 최소 3년 이상 자라야 성채가 된다. 보령의 자연산 굴은 적어도 3~5년 자란 것이다. 또 수면 안과 밖의 생활 차이로 아가미 숫자가 수하식 굴보다 확연히 많다. 이는 어리굴젓을 만들 때 자연산 굴이 수하식 양식굴보다 훨씬 양념이 아가미 속속들이 잘 배게 되어 훨씬 깊고 감칠맛이 난다.
양식굴은 남해안이나 천수만 아래 천북 일대 깊은 바다에서 수하식으로 키운다. 이때의 양식은 굴의 종패를 조개껍데기에 붙여서 양식장에 넣어놓고 1년 정도 물 밖으로 나오지 않아 일 년 내내 먹이활동을 하여 키운다. 1년이면 성채로 자라 먹을 수 있다. 하여 아가미 숫자가 자연산 굴보다 적고 굴젓을 담아도 양념이 잘 배지 않아 양념이 겉돌고 제대로 양념이 배지 않으니 자연히 맛이 쓰고 맵기 일쑤다.
요즘 시중에 나오는 것은 남해안 통영 일대에서 수하식으로 양식한 굴이다. 하지만 양식 굴이나 자연산 굴의 성분 차이는 없다.
◯ 전국 명성의 천북 굴단지
한때 천북 굴구이가 크게 유행된 적이 있었다. 굴구이 열기는 시들해졌지만 천북의 굴 명성은 여전하다. 천북 장은리의 굴 현지 직접 판매와 굴요리 시식과 체험할 수 있는 굴단지가 잘 조성되어 있다. 굴단지 내에는 바닷가를 조망하면서 굴을 즐길 수 있는 영업점이 무려 100여 집이 나란히 붙어 있다.
천북 굴단지 내 영업점은 주로 천북 장은리 주민들이 영업하고 있다. 그들은 보령시와 협력하여 단지를 편리하고 청결하며 규격화된 메뉴와 친절한 서비스를 갖춰 놓았다. 널찍한 주차장, 밝고 안전한 위생적 시설, 서해바다 조망이 훤한 시설, 위생적이고 널찍한 화장실 등을 잘 갖추어 놓았다. 겨울철 굴 철이 되면 문전성시를 이룬다.
어느 집을 선택하여 들어가도 모두 굴구이, 굴찜, 굴까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싱싱한 굴을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한 집집마다 지붕을 높게 하여 안전하고 위생적이다. 여기 굴집의 굴은 맛과 영양 최고여서 ‘천북굴’의 명성을 충분히 높일 수 있다. 100여 집 중 어느 집을 찾아도 그 맛과 메뉴가 비슷하다. 최근 많이 찾는 메뉴는 굴구이, 굴찜, 굴밥, 굴칼국수, 굴전, 굴회 등이다. 여러 가지를 조합하여 주문하여도 가격은 1인당 2만원 내외면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찾는 이는 서울, 대전은 물론 전국에서 몰려온다.
서해안 고속국도 홍성, 광천 톨게이트를 통해 오거나, 40번 국도를 타고 온다. 또 인근에는 태안반도와 충청수영성이 가까이 있어 역사 문화 관광을 연계하여 즐길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직장, 동호인 가족단위 등 단체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고 있다. 한겨울에는 관광객 대상 다양한 해양체험 프로그램의 굴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우울하고 지친 사람이면 그 누구라도 이 겨울에는 싱싱한 굴이 있는 보령을 찾아오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 보령에서 굴을 마음껏 먹고 바다를 체험하여 건강과 추억을 만들어서 새로운 활력을 가져보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