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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완의 문화산책 32, 1832년 고대도에 온 영국 암허스트 호 ②

신재완 보령문화원장

 

(문화산책31 / 영국 암허스트호에 의어 계속)

린제이 : 왜 서한과 예물을 전달하지 않았소? 우리가 요청한 식량을 보내주겠다는 헛된 약속으로 왜 계속해서 우리를 속였소?

수군우후 : 고관 한 분이 수도에서 이곳으로 오고 있으며, 내일 당신들을 방문하여 모든 것을 설명할 것이오. 내일 요청한 식량은 보내주겠소.

정부지침 : (84일 승정원에서 정한 지침) 제후 나라의 사례에 따라 다른 나라와 사사로이 교역하지 못한다는 것, 주문과 예물을 돌려줄 것, 음식을 제공할 것, 문정관 오계순 파견

 

고대도 관리에게 정부지침이 하달되니 기다리라는 통보가 전해지고 89일 린제이는 수군우후 김형수, 공충수사 이재형, 홍주목사 이민희 등을 대동하고 온 국왕의 사절 역관 오계순의 방문하여 필담을 통해 면담으로 문정하였다.

 

오계순 : 바다를 건너오는 동안 위험과 곤경을 겪으셨을 것입니다. 진심으로 위로를 드립니다. 여러분이 어떤 상처도 입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린제이 : 그렇게 말씀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늘의 보살핌으로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오계순 : 무슨 까닭으로 멀리서 찾아오셨습니까?

린제이 : 이미 통보해 드렸듯이, 나라가 귀국과 우호적인 통상교섭 체결을 희망하며 귀국의 국왕께 서한과 예물을 진상하기 위해서입니다.

오계순 :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청나라를 섬겨왔습니다. 청나라는 우리의 상국(上國)입니다. 감히 신국(臣國)이 어떻게 은밀히 (외국과) 통상교섭을 할 수 있겠습니까?

린제이 : (暹羅國, 태국)과 코친차이나(安南國, 베트남)는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있습니다. 조선도 이들 나라와 똑같은 조건에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과 이 나라들은 우리 선박과 통상을 승인하고 있습니다. 귀국은 대영제국과 통상을 하지 않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왜 다른 나라들처럼 하지 않습니까?

오계순 : 우리는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국의 명령과 승인 없이는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스스로 새로운 관례를 세울 수 없습니다.

린제이 : 샴과 코친도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지만, 외국인과 통상을 하는 것을 거절하지 않습니다.

오계순 : 우리나라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중국의 결정을 따르고 있습니다. 당신들의 사안에 대해서는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는 결코 당신들의 요청을 허락할 수 없습니다.

(린제이는 조선 고관이 자신을 스스로 중국의 속국이라고 지칭한 데에 대해서 더 할 말을 잃고 다른 문제를 제기하였다.)

린제이 : 사정이 그렇다면, 국왕 폐하께서 제 청원에 답변해 주실 것만을 간청합니다. 저로서는 그 결과를 저의 상급자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는 모든 국가의 관습에 따른 것입니다.

오계순 : 우리나라의 관습은 그런 일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지방 관리가 감히 이 일을 수도에 보고할 수 없습니다. 수도에 있는 관리들도 국왕께 그 문제를 감히 보고할 수 없습니다.

린제이 : 그러면 우리는 국왕이 아니라 관리들이 거절한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런데 관리들은 국왕에게 모든 일이 보고되어 결정된다고 계속해서 우리에게 확인하였는데 어떻게 이처럼 서로 다른 주장을 일치시킬 수 있겠습니까?

오계순 : 이 사안은 국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고위 관리들이라도 감히 국왕께 보고할 수 없습니다.

린제이 : 그러나 이 사안이 국왕에게 보고되었으므로 국왕의 결정을 기다리라는 긍정적인 통보를 받았습니다.

오계순 : 누가 당신에게 그것을 통보하였습니까?

 

통상교섭은 결렬되고 역관 오계순은 두 관리(우후와 목사)가 서한과 예물을 받은 것은 늙고 무능하여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하였고 곧 그들은 기소될 것이라고도 하였다. 이에 대하여 린제이는 거짓 구실 때문에 거의 3주 동안 이곳에서 지체한 것에 대해 불만이 많다는 것을 표명하고 동시에 자신들이 여기에 온 사실을 국왕께서 모르고 있다는 것도 신뢰할 수 없다고 통고하였다. 린제이가 계속 서한과 예물 돌려받기를 거절하자 오계순은 완전히 자제력을 잃고 당황해하였다. 린제이는 요청한 식량을 공급받을 때까지 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하였다. 오계순은 식량을 받으면 서한을 받아주겠다고 약속해 달라며 설득했으나 린제이와 귀출라프는 어떤 약속도 거부하고 그곳을 떠났다.

 

810일 린제이가 요구한 식량을 받았다. / 2(), 돼지 4(), 80(), 절인 물고기 4(), 갖가지 채소 20(), 생강(生薑) 20, 파뿌리 20, 마늘뿌리 20, 고추 10, 백지(白紙) 50, 곡물 4(), 맥면(麥麵) 1, 밀당(蜜糖) 50, 1백 근, 잎담배 50

린제이는 다시 한번 공자의 사해(四海)의 모든 인류는 형제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어떻게 외국인과의 통상을 금할 수 있습니까?”라고 반문하였다. 그리고 이 나라가 가난한 것은 이것은 외국과 교역하는 것을 금지하고 차단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관습이 지속하는 한 이 나라는 이웃 나라보다 번영하고 발전하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로 쇄국정책의 오랜 관습을 버릴 것과 외국과의 교류의 필요성과 그래야만 조선도 다른 나라처럼 발전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간곡히 제안하였다. (~ 이곳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교역을 허락하면 금과 은이 이 나라로 흘러들 것이고 정부의 수입은 늘어날 것이며 국가의 부와 번영은 급속히 증대할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중국과 일본은 외국 무역을 장려합니다. 왜 여러분은 이웃 나라의 좋은 사례를 따르지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린제이는 앞으로 영국 선박이 혹시 조선에 당도하면 도움을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린제이와 귀출라프가 서명하였다. 이런 내용으로 인해 이 문서를 해난구조조약의 체결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811일 아침 조선 관리 4(오계순, 이재형, 김형수, 이민희)이 배를 방문, 국왕에게 전달할 서한과 예물 되돌릴 것을 다시 부탁하였으나 린제이는 거절하고 국왕의 조사를 위한 비망록 4를 만들어서 각각 1부씩 나누어주었다.

812일 아침이 되자 암허스트호는 돛을 올렸다. 이재형 장군은 단독으로 배를 방문하여 당신들은 수만 리나 떨어진 먼 곳에서 우리에게 선물도 가져왔는데, 이렇게 보답도 없이 당신들을 대우했습니다. 애석하게도 그것이 우리의 법입니다.” 하니, 중국인들이 국왕이 우리와 통상하는 것을 거절하도록 개입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오계순과 다른 두 관리인 김형수와 이민회를 위해 술 몇 상자를 해안으로 보내겠다고 하자 그는 무척 감동하였지만 좋은 말(우리가 이렇게 하찮게 당신을 대우했는데도 당신은 계속해서 우리를 친구로서 존중하고 선물로 경의를 표하다니 유감입니다.)’로 거절하였다. 린제이는 고대도를 떠나면서 역관 오계순에게 조선 정부의 행동에 불만이 있지만 오계순에 대해서는 가장 친절하게 대해 준 기억을 간직할 것이며 이 의심 많고 거의 문명화되지 못한 조선에서 좀 더 나은 운명으로 살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작별 인사를 하였다. 김형수와 이민회에게는 항상 친절과 공손으로 대해준 것도 기억하겠다고 하였다. 이렇게 하여 린제이는 통상 교섭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조선을 떠났다. 린제이 일행이 두고 간 물건들을 문정관과 역관 등이 일일이 수량을 확인하여 궤()에 봉해 두게 하고 조선 관리에게 준 책자를 빠짐없이 모아 함께 봉()하여 본주(本州 홍주)의 관고(官庫)에 보관하였다고 한다. 홍주 관아에 보관된 성격 책 한 질의 그 후의 행방은 묘연하다.

 

린제이의 통상 교섭의 실패 이후 13년이 지난 1845년 봄 영국 해군이 거문도에 불법 상륙하였으나 조선의 강력한 항의로 철수하기도 하였다. 1882년 한미우호 통상조약이 체결된 다음 해 1883년 한영우호 통상조약 체결되고, 1884년 초대 주한 영국 총영사 해리 파크스가 취임, 조선 측에서는 1901년 민영돈 영사 영국 부임하였다. 1905년 이후 일본 침략으로 물러났다가 해방 이후 1949년 한영수교 합의가 이루어졌고, 1950년 한국전쟁에는 미국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UN군 소속 영국군을 파견하였다.

 

2023년 현재 영국과 한국은 다 같이 중요 무역 동반자로 크게 자리하고, 교역량은 수출입 130억 불 정도로 20위 정도로 위치하고 점차 확대되고 있다. 4만 명의 재영 한국인이 있고, 학문, 문화, 예술,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호 교류하고 있다.

(<신재완의 문화산책 33>은 귀출라프의 조선선교여행기를 펼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