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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승용, 보령의 새로운 정신을 찾아서

엄승용(숙명여자대학교)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

선거가 끝나면 승자와 패자의 엇갈린 감정으로 후보자 당사자는 물론이고 유권자들까지 들뜬 분위기에서 몇 주 보내는 것 같습니다. 후보자 당사자인 저로서는 개인적으로 울적한 감정을 그대로 표시할 수는 없고 주변에서 고생하면서 도와주신 모든 분들의 상실감을 챙겨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선거비 보전에 필요한 득표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지지표를 던져주신 유권자들께 감사의 말씀을 반드시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분들은 지지 후보자자 당선되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표를 보내주셨습니다. 더욱 소중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저는 요즈음 시간이 날 때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박현모 박사가 저술한 세종이라면 : 오래된 미래의 리더십을 읽고 있습니다.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제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경복궁에서 세종실록학교를 열어주신 전 문화재청 엄승용 국장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라는 머리글의 칭찬 때문이 아니라, 현재 처한 저의 인생 대목에서 어떻게 처신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선인들의 조언을 얻고 싶어서입니다. 세종 정신의 기본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주어진 문제를 창조적으로 해결하는 마음가짐인 것 같습니다.

 

원래 박현모 박사와의 만남은 제가 영국 유학을 마치고 문화재청에 돌아와서 정부 혁신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2004년 당시 저는 우리나라의 정부혁신이 서양의 경영혁신 사례를 모델로 추진되고 있는데, 이러한 현실이 미국에서 공부한 관료들과 학자들의 영향 때문이라고 비판하면서 우리 선조들의 정신을 현대적인 혁신모델로 발전시키자고 주장했습니다.

 

우선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정조 등 많은 역사인물들을 대상으로 설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장애가 되는 것은 조직혁신 전문가는 역사와 정치에 대한 지식이 충분하지 못한 경영학자들이었고, 역사학자와 정치학자들은 경영이나 조직혁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이어서 상호간 대화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저는 밤샘토론을 하면서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두 그룹의 전문가들 사이에서 소통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와 마음이 통하여 선조들의 혁신이라는 새로운 조직혁신 프로그램 개발을 선도한 젊은 정치학자가 박현모 박사였습니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새로운 4년의 지방자치 방향을 잡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선거 다음 날 보도자료에서 당선자가 통합과 화합의 시정을 펼칠 때 필요하다면 모든 협력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보령의 사회는 오랜 기간에 걸쳐 갈등의 골이 깊어져 왔습니다. 사회적 통합과 화합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중앙부처에서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두 집단 사이에서 소통의 물꼬를 텃던 경험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오히려 제도권 정치가 아닌 시민사회의 자발적 상향식 사회운동이 더욱 효율적일지 모릅니다. 중앙부처와 지방정부가 담당할 수 있는 영역은 자꾸 줄어져 가고 오히려 시민사회 또는 주민공동체가 공공문제에 대한 생산적 대안을 제시하고,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 경제를 통해 실천할 수 있는 분야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과거는 제도권 정치, 즉 국회의원이나 시장 등의 타이틀이 주어져야 일할 수 있는 시대였는데, 이제는 창조적 아이디어와 열정을 갖춘 사회운동가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일본이나 유럽에서 성과를 거둔 농어촌 개혁이나 마을가꾸기 사업이 민간주도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와 같이 시민공동체 중심의 사회적 경제가 뿌리를 내려야합니다. 제가 읽고 있는 박현모 박사의 세종정신에서 많은 가르침을 얻고 있습니다.

제가 보령에 존재하는 이유가 반드시 정치적 타이틀을 얻는 것에 국한된다면 유권자들이나 저의 입장에서 모두 불편할 것입니다. 이 지역 시민들은 거의 모두 다양한 지방정치인들과 정치적 친소관계가 이미 정해져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아직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저를 정치인으로 여기지 말고 사회운동가로 대하여 주기 바랍니다라는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정치적 장벽을 초월하여 다양한 세력과 이익집단과 소통하면서 보령의 새로운 정신을 찾아보는 것이 저의 바램입니다.

이런 저의 의사를 피력할 때, 제도화되어 있는 중앙부처 조직에 있던 사람이 이 지역의 거친 시민사회에서 자율적이며 실천적인 세력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요즈음 마틴루터 킹 목사의 연설을 들어가면서, 아웅산수치 여사의 대화를 들어보면서, 그리고 김구 선생님의 문화강국론을 되풀이 해가면서, 시대적 한계를 탓하지만 말고 매일매일 소통의 대상을 넓혀가고, 보령의 안에서만 해법을 찾으려 하지 말고, 넒은 세상과의 벽을 허물어 새로운 정신과 통하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그것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저를 지지해주신 그 분들에게 최소한의 보답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