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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완 칼럼] 청라 장현 정자 가소정(可笑亭) 짓고 유유자적

신재완보령문화원 이사

 

 

개척의 역사 황룡리 재뜰과 석우천 수로를 뒤로 하고, 오서산 하단 기슭을 따라 동으로 향하는 넙티길을 타고 10여 분 가면 이웃 장현리에 들 수 있다. 내내 산기슭을 개간한 들이 넓게 펼쳐진다. 지금부터 200여 년 전 여기 장현리에 평산신씨와 안동김씨가 입향하여 척박한 산기슭 솔밭을 개간 농경지로 일궈 옥토로 바꿔 놓은 곳이다. 보령시에 간척지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여기 장현리의 논 면적이 보령시 104개 각 마을 리의 논 면적 중에서 가장 넓은 곳이었다고 한다.

 

이 장현리 넓은 들 한 가운데 오래된 옛 정자가 하나 있어 소개해 본다. 이름은 가소정이라고 한다. 소유 및 관리하는 이는 정자 바로 옆에 집을 짓고 사는 안동인 김장한(1940년생, 金章漢)이다. 이 정자가 처음 세워지게 된 것은 그의 6대조 할아버지인 김이철(金履澈 1782~1855)1830년 경이라고 한다. 김이철은 그의 호 가소(可笑)를 따서 정자의 이름으로 정했는데, 가소란 말이 세상 돌아가는 짓이나 꼴이 하도 터무니없고 같잖아 웃는 웃음정도여서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연과 벗을 삼고 그저 시를 읊고 퉁소를 분다는 뜻으로 세운 것이다.

 

정자는 사모집에 홑처마의 납도리식으로 대지 위에 방형의 자연 초석을 놓은 후에 방형의 기둥을 세워 놓은 단출한 건물이다. 정자 안에는 마루가 있으며, 높이 50cm 정도로 난간이 둘러쳐져 있다. 정자 상단에는 가소정이라는 현액이 걸려있고, 현액의 좌우에는 글이 쓰인 여러 개의 목판이 걸려있는데 마모가 심하여 알아보기 힘들다. 아마 주변 선비들의 시가 아닌가 추정한다. 규모는 작지만 생활 주변에도 작은 정자가 있는 한국 정자 문화의 한 표본이다.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그의 현손이 중수하였는데 이후 붕괴의 위험에 노출되어 2006년 보령시에서 보수하였다.

 

처음 정자를 지었을 당시 김이철은 홍성군 갈산면에서 현지로 이주하여 사정(斯亭)을 짓고, 보령군 청양군 등 인근 지역 사림들과 모여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김장한에 의하면 최근 해공 신익희 선생 서거 시에는 청라면 지역 유림들이 만사(挽詞, 죽은 사람을 애도하여 지은 글을 천이나 종이에 적어 깃발처럼 만든 것)를 지으려 여기에 모였다고 한다. 또 김장한의 선대인 김창진 씨 살아 생전에는 지방유지들이 모여 유유자적하였다고 한다. 이 정자는 보령시에 조선 사대부가 지어 현존하는 유일한 것이다. 2021년에 보령시에서 해체 복원 개축하였다.

 

특히 연안인 광헌 이우명 선생(1804 ~1863, 景昭, 廣軒, 剛齋 宋穉圭의 문인. 청라에 살면서 규남 圭南 河百源, 영의정을 지낸 南公澈, 대사성 小石 金遇淳 등과 교유한 유학자이며 시인)의 출입이 가장 많으셨고, 현판도 이선생 친필이 많은 것으로 전해지나 세월이 흐르고 부식되어 원문 및 작자를 판독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그중에서 겨우 몇 점 만 다음처럼 이봉규 선생(1943년생, 전 보령향교 전교, 한문학자)이 해역하여 그 내용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해설판 7언시
幕笑一間可笑亭 비웃지 말라 한 칸 가소정을
亭名從古各有形 정자 이름을 옛날부터 각기 모양에 따라 짓느니!
先生心事本如水 선생의 심사가 본디 물과 같아
八十光陰以笑經 여든 살 세월을 웃으며 사네.
可笑亭 - 가히 기쁘게 웃고 노는 정자다.
烏棲以南聖住成北 - 오서산의 남쪽이요 성주산의 북쪽이라
凡天下亭號之中始聞笑亭也 何以云之可笑亭耶第寒士之處所也 故號曰笑亭 志而格物風景 莫過於此也于中華岳陽與海東練光 公舍寒影而己至於斯亭 子子孫孫行樂而將至興百年战盖腾覽樓閣而豈非妬色歟 -主人 安東金氏 小作 -
무릇 천하의 정자 이름 가운데 비로소 소정이라 들었다. 어찌하여 가소정이라 일렀느냐? 또한 한사의 처소라. 그런고로 이름하여 가소정이라 기록하였다. 사물의 이치에 풍경이 여기에 비길 데가 없다. 중국의 악양루와 더불어 해동 조선의 연광정과 함께 한적한 경치가 같을 따름이라. 이 정자에 이르러 즉, 자자손손이 잘 보존하고 놀고 즐김이 장차 몇 백 년에 이를지라 대개 다들 누각을 잘 볼 것이요. 어찌 미워하리요. - 주인 안동김씨의 소작 -
夫笑有為笑自有喜笑為或有嘲笑焉 斯亭之笑果是喜笑歟抑亦嘲笑歟 十里溪山風物蕭洒覽其勝狀喜笑一間欄欖制度狭小嘲其隘而自笑其喜也可以笑其朝也可以笑故曰可笑亭然亭以笑名志喜夫
-黄谷散人證書-
무릇 웃음이 웃음 됨에 있어 스스로 기쁜 웃음이 있고 혹은 비웃는 웃음이 있다. 이 정자의 웃음은 과연 이 기쁜 웃음이냐? 또한 비웃는 웃음이냐? 십리 되는 시내와 산의 풍물이 한적하고 고운 그 좋은 경치를 보고는 기쁜 웃음이요. 한 칸의 난간과 제도의 협소함에 그 좁은 바를 조롱하고 스스로 웃으니 그 기쁨도 가히 웃고 그 조롱함에도 가히 웃음이 있는 고로 가로대 가소정이라. 그러나 정자의 소자로 이름함은 기쁨을 기록함이라.
황곡산인(황룡리 느르실 거주하는 사람) 삼가쓰다.
今亭名可笑靜拙戒心或憲梁俗由此可笑名為 - 京客謹書 -
지금 정자의 이름은 가소정이라 졸자의 마음으로 경계함은 혹시 세속에 물들까 염려되다. 이로 말미암아 가소로 이름하다. - 서울사는 객이 쓰다
敬次 - 삼가 공경하여 주인의 운에 차하다.
斯翁本意月如明 最受看松獨也清 人可笑亭亭有笑 此懷那得寄餘生
이 노인의 근본은 달처럼 밝기만 한데, 먼저 소나무를 보고 홀로 맑고 푸르름을 사랑하였다네. 사람들이 가히 웃고 놀만한 정자이니 여기 정자에서 항시 웃음으로 회포를 풀어 남은 생에 무치리요. - 작자의 기록은 없음 -

 

산기슭을 개간하여 옥토를 만드는 개척을 하면서도, 여유와 풍류를 즐긴 모습이 참으로 보기에 좋다.